건식 복사기에 대한 착상은 대공황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칼슨은 1930년에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의 물리학과를 졸업했지만, 대공황의 여파로 원하는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그는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니다가 전기부품 제조업체인 말로리 사(P. R. Mallory & Company)에서 특허분석 업무를 맡았다. 칼슨의 업무에는 각종 문건이나 도안에 대한 복사본이 필요했는데, 당시에는 주로 카본지가 복사에 사용되었다. 그것은 매우 불편하고 지루한 작업이었다. 손과 문서에 검댕이가 묻어났으며 복사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칼슨은 “서류를 가지고 와서 구멍에 넣으면 곧바로 복사본을 얻을 수 있는 기계”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건식 복사기에 대한 착상은 대공황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칼슨은 뉴욕 공립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복사 기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다. 처음에는 사진 복제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사진은 사무용으로 적합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다음에 칼슨이 주목한 것은 광전도성 원리에 입각한 건식 복사였다. 광전도성은 어떤 물질에 빛을 쪼여줄 때 전기적인 성질이 변하는 것을 뜻하는데, 당시에 헝가리의 물리학자 셀러니(Pál Selényi 혹은 Paul Selenyi)는 정전기를 띤 입자가 어떻게 반대 극의 표면에 달라붙는지에 대해 논의한 바 있었다.
칼슨은 셀러니의 논문을 탐독한 후 판 위에 비치는 이미지와 똑같은 모양으로 건조한 입자를 붙게 만든다면 건식 복사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만일 원래 사진이나 문서의 이미지를 전기전도성이 있는 물질의 표면에 비추면, 전류는 인쇄물의 빛이 지나간 자리에서만 흐르게 될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판(표면) 위에서 빛이 지나간 자취의 패턴을 따라 전기적 성질을 띤 판에 마른 입자가 달라붙게 한다면 건식인쇄물 복사본을 얻게 될 것이다.” 칼슨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전자사진술(electrophotography)’이라고 불렀다.
1930년대 내내 칼슨은 복사기 제조에 매달렸다. 그는 뉴욕 퀸즈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부엌에 작업실을 만든 후 다양한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에는 수많은 약품이 사용되었고, 이웃들은 계란 썩는 냄새가 난다고 불평했다. 한 번은 이웃집 주인의 딸이 칼슨에게 항의하러 왔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1934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칼슨은 1936년에 뉴욕 로스쿨에 진학하여 1939년에 로스쿨을 졸업했으며 이듬해에 변호사 자격을 받았다. 1937년 10월에는 전자사진술에 대한 예비 특허를 등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