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정액요금 거품 걷어낸다
비싼 스마트폰 출고가를 지렛대 삼아 이동통신 정액요금을 한껏 끌어올린 뒤 고객 스스로 '발목'을 잡혀주겠다고 하면 깎아주는 이동통신회사들의 '할인' 마케팅을 정부가 '비정상'으로 꼽아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통사가 가입자한테 실제 받는 요금에 맞춰 정액요금제를 정비해 요금제에 낀 거품을 걷어내고, 할인에 따른 고객 차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1일 <한겨레>에 "이동통신 사업자들한테 정액요금제 개선을 주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동통신 업체들도 정부의 정액요금제 개선 요구를 거부할 명분이 적다고 보고, 10월1일로 예정된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시행을 계기로 정액요금제를 개선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한 이통업체 관계자는 "할인 전략이 이동통신 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이통요금이 비싼 것처럼 보이게 하는 측면이 있다. 휴대전화 출고가 거품도 꺼지는 만큼, 요금제도 실질요금에 맞춰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케팅 쪽은 반대 분위기가 강해 이통사 내부적으로 진통도 예상된다. 마케팅 쪽은 요금 할인 전략이 가입자 유치에는 큰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이통사들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정기적으로 요금을 내려왔다. 소비자·시민단체와 정치권의 요금인하 요구를 받을 때마다 기본료, 음성통화료, 문자메시지 이용료, 가입비, 발신자번호표시 이용료, 데이터통신 이용료 등을 동시에 또는 돌아가며 내렸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인하' 대신 '할인' 전략을 폈다. 이때부터 '장기 가입 할인', '가족 결합 할인', '약정 할인' 등이 잇따라 등장했다.
하지만 '중복 할인'을 허용하지 않아 말이 많았다. 예를 들어 약정 할인과 가족 결합 할인을 동시에 받을 수는 없다. 할인이 가입자 발목을 잡는 수단일 뿐, 고객 통신비 부담 완화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족 결합 할인으로 이미 발목을 잡은 고객한테 약정 할인까지 해줘 요금 수익을 줄일 이유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약정 할인은 비싼 보조금을 써 끌어온 새 가입자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수단으로 도입됐다.
할인은 월 정액요금을 높게 유지하는 지렛대 구실도 해왔다. 실제로 에스케이텔레콤(SKT) '전국민 무한 69 요금제'의 월 정액요금은 6만9000원이다. 하지만 약정 할인을 적용하고 난 뒤 에스케이텔레콤이 실제로 받는 요금은 5만1500원이다. 요금제에 명시된 요금과 실제 요금 수익 사이에 20% 정도의 격차가 발생한다. 요금을 실제 목표치보다 20% 높인 뒤, 할인으로 생색을 내면서 가입자 발목을 잡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해볼 수 있다. 이는 케이티(KT)와 엘지유플러스(LGU+)도 마찬가지다.
할인은 법으로 금지된 고객 차별 문제도 일으킨다. 한 사업자 것을 오래 쓰고 있거나 약정기간이 끝난 사람들은 약정 할인을 받지 못한다. 이통사들은 한결같이 "약정기간이 끝난 가입자들한테는 아웃바운드(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설명하는 방식) 콜을 통해 재약정을 권유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한 이통사 임원은 "'할인'은 마케팅 쪽이 선호하는 영업수단인데, 그 배경에는 약정기간이 끝난 가입자들한테 요금을 20%가량 더 받아내려는 목적도 있다"고 밝혔다.
이동통신 가입자가 정액요금제에 가입하면서 24개월 약정을 하면 월 정액요금을 20%가량 깎아준다. 24개월 동안 다른 사업자로 옮겨가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조건으로 요금을 깎아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에스케이텔레콤의 '전국민 무한 69' 요금제 가입자가 24개월 약정을 하면 월 정액요금 6만9000원(부가세 별도) 가운데 1만7500원을 할인해 5만1500원만 청구한다. 물론 중간에 도망가면 그동안 할인받은 요금을 다 물어내야 한다.
그럼 약정기간이 끝난 뒤에는 요금이 어찌될까? 당연히 6만9000원을 다 내야 한다. 이통사들은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약정기간이 끝난 뒤 6개월 동안은 봐준다. 하지만 이 기간이 지나도록 재약정을 하지 않으면 '약정 할인' 명목으로 요금을 20% 깎아주던 것을 거둔다. 김점순(58)씨는 2년쯤 전 휴대전화를 새것으로 바꾸면서 2년 약정을 했다. 요금을 20% 정도 깎아준다고 약정을 하라고 해서 따랐다. 최근 우연히 그동안 모아놓은 요금청구서를 살펴보다 매달 똑같던 요금 총액이 두달 전부터 부쩍 는 것을 발견했다. 손녀를 통해 이통업체 고객센터에 문의하니, 약정기간 만료로 요금 할인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한 이통업체 임원은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재약정을 하지 않아 요금을 더 내는 가입자들이 제법 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어르신 등은 제대로 안내를 받지 못해 할인을 못 받는 경우도 많다. 전형적인 고객 차별이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