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보다 나쁜 사이버 폭력 1-3> 페북, 카카오스토리에 숨은 위험한 시선.. 사이버 스토킹
[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끝난 줄 알았다. 용기를 내 학교ㆍ경찰에 사실을 알렸지만 끝이 아니었다. 학교를 그만 뒀다. 내가 벗어 나려면 아이들을 안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현우(15ㆍ가명) 군이 지난 7월 열린의사회에서 운영하는 학교폭력 상담프로그램 '상다미쌤(상담 선생님을 친근히 부른 말)'에게 알려온 내용이다. 학교폭력 가해자로부터 두 달 동안 문자 스토킹을 당한 이 군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열린의사회와 연락을 끊었다.
중학교 2학년이던 이군은 같은반 대부분의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잘난척을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어느 순간 부터 이 군은 학교에서 유령이 돼 있었고, '장난'을 빙자한 아이들의 폭력도 수시로 이뤄졌다.
그 중심에는 김무석(15ㆍ가명) 군이 있었다. 견디지 못한 이 군은 지난 4월 학교와 경찰에 이를 알렸다. 학교폭력대책위가 열리고 이 군의 따돌림을 주도했던 김 군에게는 강제 전학 조치가 내려졌다. 악몽은 끝난 듯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전학을 간 김 군은 끊임없이 이 군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카카오톡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왔다. 욕설과 함께 "나만 너를 따돌렸냐?", "나만 때렸냐?", "내가 여기 전학와서 왕따 당하면 니가 책임 질 거냐?" 등의 메시지가 수백통 씩 쏟아졌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왜 대답을 안하냐", "내가 우습냐. 내가 전학왔다고 우리가 만나지 않을 것 같냐"라는 협박이 이어졌다.
친구 차단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낯선 아이디로 문자가 왔다. 김 군이었다. 김 군은 친구의 이름으로, 부모님의 이름으로, 혹은 탈퇴후 아이디를 바꾼 뒤 메시지를 보냈다. 카카오톡을 스마트폰에서 지울 까도 생각했지만, 그 아이 하나 때문에 다른 친구들과의 소통 자체를 포기할 순 없었다. 수백통 씩 쏟아지는 김 군의 문자는 두 달 동안 이어지다 이 군이 경찰에 다시 신고를 한 뒤 비로소 끝이 났다. 이 군은 경찰에 신고를 하고 두 달 뒤인 6월 말 학교를 스스로 그만뒀다.
한 학생이 계단을 빠르게 뛰어올라가고 있다. (이 사진은 특정사건과 관계가 없으며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연출된 사진임.)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이 군의 사례처럼 학교폭력은 오프라인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학교에서, 학교 밖에서, 집 안 컴퓨터 앞에서, 그리고 손에 쥔 스마트폰 안에서도 학교폭력은 이어진다. 특히 SNS를 통한 사이버 폭력은 24시간 아이들을 옥죄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사이버스토킹이다. 열린의사회는 사이버스토킹을 '원하지 않지만 SNS 등을 통해 끊임 없이 말을 걸고, 싫다는 의사를 밝혔어도 그 행태가 멈춰지지 않는 상황'으로 정의했다. 사이버스토킹은 '폭력'의 형태를 교묘히 숨긴채 일어나기도 한다.
지난 10월 초등학교 5학년인 이윤정(12ㆍ가명) 양은 '상다미 쌤'에게 "아이들이 나를 왕따 시키는 것 같다. 죽고 싶다"며 상담을 신청해왔다. '절친'이었던 최영선(12ㆍ가명)양과 사소한 다툼으로 사이가 멀어진 후였다. 최 양은 이 양의 사진을 '원숭이'와 합성한 뒤 사진 중심의 SNS인 카카오스토리에 올렸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사진에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정말 똑같다", "원숭이냐, 이윤정이냐", "생긴 것 뿐만 아니라 하는 짓도 똑같지 않아" 등의 댓글이 올라왔다. 또다른 형태의 왕따라는 느낌이 들었다. "지워달라"는 이 양의 요구에 최 양은 화답했지만, 그 때 뿐이었다. 사진은 사라졌다가, 몇 분 뒤 다시 올라왔다. 카카오스토리에 걸린 사진은 급기야, 이 양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대체됐다. 이후 원숭이와 이 양의 합성 사진은 다른 사진들로 합성돼 한 달 동안 올라왔다, 지워졌다를 반복했다.
헤럴드경제가 열린의사회와 함께 지난 7월부터 11월까지 모바일 학교폭력 상담프로그램 '상다미쌤'을 통해 청소년 사이버 폭력 621건에 대한 유형별 분석을 한 결과, 6%(40건)가 카톡이나 카스 등 SNS를 통한 '사이버 스토킹'이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21건으로 가장 많았고, 중학생이 15건, 고등학생이 4건으로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