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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약관도 공정위가 감독?..금융당국 표준약관 딜레마

디자인인스 2016. 8. 24. 10:04

[내달 실손·차보험 표준약관 담당 상품위원회 출범, 보험업법 개정 '공정위 권한확대' 논란 ]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보험규제 완화가 엉뚱하게도 타 정부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권한만 강화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담당하던 실손의료보험과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을 민간기구인 상품심의위원회(이하 상품위원회)에 넘기기로 하면서 공정위가 보험 표준약관에 대해서도 시정명령권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변액보험과 자동차보험 담합 의혹으로 법정에서 공정위와 홍역을 치렀던 보험사들은 상품개발 자율권을 얻으려다 졸지에 또 다른 ‘시어머니’를 모실 처지가 됐다.



◇상품위원회 구성 마무리, 다음달 발족=23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상품위원회가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 산하 민간기구 형태로 다음달 출범할 예정이다. 위원장에는 금감원 출신의 김치중 전 보험연수원장이 내정됐다.


상품위원회는 생명보험, 손해보험, 제3보험 등 3개 분과로 운영된다. 분과 위원장에는 생명보험에 이원돈 보험학회장(대구대 교수), 손해보험에 성대규 전 금융위 국장, 제3보험에 박태성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각각 내정됐다. 이들 분과 위원장을 비롯해 강정화 소비자연맹 회장, 박상래 보험계리사회장 등 전문가와 학계 인사들로 구성된 7명의 민간위원이 내년부터 상품위원회 활동을 시작한다.


금융위는 지난해 10월에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10여개에 달하는 보험 표준약관을 폐지하고 실손보험과 자동차보험의 표준약관에 대해서는 제·개정 권한을 민간기구에 넘기기로 했다. 기존에는 금융위에서 권한을 위임받은 금감원이 표준약관을 만들고 시행세칙에 따라 각 보험상품에 적용하도록 했다. 금융위는 금감원이 표준약관을 통해 보험상품 개발에 과도하게 개입한 결과 ‘붕어빵’ 상품이 양산됐다고 보고 표준약관 폐지를 추진했다.


◇보험 약관도 금감원·공정위 두 시어머니=금융위는 상품위원회가 표준약관을 변경하면 이를 금감원에 신고하고 금감원은 이 내용을 다시 공정위에 통보하도록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표준약관은 보험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공적기구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은행은 은행법에 약관과 관련한 규정이 없어 공정위의 표준약관 심사를 직접 받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와 여신금융업계는 각각 금융투자협회와 여신금융협회가 표준약관을 금감원에 신고하면 금감원이 이를 취합해 공정위에 통보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금융위는 보험 표준약관도 금융투자와 여신금융업계의 관행을 따르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표준약관 변경을 신고받는 금감원과 통보받는 공정위 모두 약관 시정명령권을 갖는다는 점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감원 감독만 받다가 이제는 공정위까지 두 명의 시어머니를 모셔야 하게 됐다”며 “표준약관에 대해 금융당국과 공정위의 이중규제를 받게 됐다는 점에서 상품위원회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의 금감원 견제에 어부지리 공정위=공정위로선 은행, 금융투자, 카드에 이어 보험 약관에까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금융업계에 미치는 공정위 영향력은 막강하다. 공정위는 올초 신용카드사에 임의로 부가서비스를 변경하는 약관을 시정하라고 요구했고 최근에는 직권으로 은행여신거래 기본약관 개정을 추진하면서 은행권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상품위원회를 통해 상품 개발의 자율성을 확대했다는데 의미가 있다”며 “공정위 통보는 금융투자업계나 여신금융업계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보험사들은 그간 변액보험과 자동차보험 답합 의혹으로 공정위와 관계가 껄끄러웠다. 이에 대한 법정 공방은 대부분 보험사 승소로 끝났다. 보험사들이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정위는 보험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아 보험 표준약관에 시정명령권을 갖게 되면 상품 개발의 자율성 확대는커녕 상품 개발의 절차만 복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금융위가 금감원의 힘을 빼려다 도리어 공정위에 힘만 실어줬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표준약관은 실제로 △보험금 지급 사유 △계약 전 고지 의무 △해지환급금 계산 방법 등 소비자보호 사항이 주를 이뤄 금융위가 표준약관 심사를 민간기구에 맡기면서 내세우는 상품 개발의 자율성 확대라는 명분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